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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공예가 밤구름

현재를 온전히 사랑하는 법

에디터 | 현예진

포토그래퍼 | Hae Ran


사람의 손을 거쳐 탄생한 사물에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자필 편지와 인쇄된 텍스트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듯, 규격과 효율 속에 양산된 공산품은 따라 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대나무 수확부터 대통을 반으로 쪼개고 쪼갠 뒤 댓살을 만들고, 고유의 짜임으로 바구니를 완성하기까지. 오랜 반복과 고민, 시간의 누적이 만드는 경이는 단순히 숫자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죽공예가 밤구름 작가는 작은 집을 짓는 마음으로 대나무 바구니를 만든다. 자연의 소재, 자연과 어울리는 삶을 택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구름 님의 작업을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주로 대나무를 활용해 바구니, 채반, 조명 등의 소품을 제작하는 죽공예가 밤구름입니다.


어떤 계기로 대나무를 소재로 선택하셨나요?


사실 처음에는 대나무라는 물성보다 바구니 자체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텃밭을 일구다 보니 작물을 담을 바구니에 대한 로망이 생겼고, 마을에 사시는 할아버지한테 싸리 바구니 만드는 법을 배웠죠. 이후에 우연히 대나무로 바구니를 만드는 수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대나무라는 물성 자체에 매료되었어요.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소재라는 점과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가공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더라고요. 대나무 자체의 힘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대나무와 사랑에 빠진 최초의 경험을 들려주세요.


처음 들었던 수업에서 선생님이 대나무를 대하는 태도를 알려주셨어요. 한두 마디의 대통을 들고 가운데에 앉아서 대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거예요. 이 대나무가 어디서 어떻게 자랐고, 어떤 모습이었는지요. 그런 다음 앞에 놓인 대나무를 칼로 쪼개고 가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는데, 어떤 마음이 느껴졌어요. 대나무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이 마치 좋아하는 친구를 소개해주는 느낌이었죠. 그날의 기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저장돼 있어요.



수확부터 편죽 작업까지, 대나무가 바구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해요.


땅에 물이 빠지는 시기인 겨울에 대나무를 수확하러 산지에 가요. 수분이 빠진 상태로 수확해야 바구니로 만들었을 때 곰팡이도 덜 피고 튼튼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수확한 대나무는 만들고 싶은 바구니를 떠올리며 필요한 길이만큼 자르고 수세미로 씻어요. 상황에 따라 대에 껍질을 벗기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 다음 대칼로 쪼개 일정한 두께의 댓살을 만들어요. 마지막으로 다양한 짜임을 활용해 바구니를 짜요. 어떤 바구니는 테를 감기도 하고, 어떤 바구니는 댓살로만 마무리하기도 하고. 완성한 바구니는 판매도 하고 제가 쓰기도 해요.


좋은 바구니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중요한 것은 역시 재료예요. 좋은 대나무로 만든 대나무가 가장 좋은 법이죠. 대나무가 가진 힘과 물성을 잘 살리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나무는 사실 나무가 아니고 풀에 가까워요. 나무와 풀의 가장 큰 차이는 나이테 유무인데, 대나무에는 나이테가 없어요. 5월 늦봄에 죽순이 올라와서 한 달 만에 평생 자랄 키와 굵기를 키워내요. 부드러운 풀과 단단한 나무의 장점만 쏙쏙 빼온 것 같달까요. 굉장히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서로 엮이면 단단해지는 물성을 살리는 게 중요해요.


수확 여행을 담양으로 가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기준으로 대나무를 고르시는지요.


공예용 대나무는 주로 3년생이에요. 겨울을 두 번 보낸 시점으로, 대나무 생애에서 가장 건강한 청년기죠. 마디가 길고 굵은 대나무는 재료로 사용하기 좋아요. 그렇다고 꼭 길고 굵어야만 쓰임이 좋은 건 아니에요. 대나무마다 각각의 쓰임이 다르거든요. 그런 기준에 연연하지 않고 대밭을 서성이다가 마음이 가는 대나무를 선택해요. 잘 벌채하고, 잘 저장해서, 남김없이 쓰는 일이 중요하죠. 담양에서 양평까지 거리가 있기 때문에 잘 수확해 와서 낭비 없이 쓰는 편이에요.


양평이라는 환경이 작업에 선사하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양평은 대나무가 자라는 지역이 아니라 아쉬운 점도 있어요. 대나무가 자라는 담양처럼 남쪽 지역에 살았다면 주변에 작업자도 많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또 양평만의 장점이 있어요. 서울과 가까워서 다양한 작업자, 공간, 브랜드와의 협업이 수월한 편이고 스스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죠. 아주 시골이 아니면서 자연이 충분한 곳이라 두루두루 혜택을 받고 있어요.



바구니 만드는 과정이 집을 짓는 과정과 닮은 지점이 있다고요.


바구니 형태마다 댓살을 짜는 방법이 달라요. 원형 바구니를 만들 때는 그릇을 빚는 느낌이, 사각 형태의 바구니를 만들 때는 댓살을 벽돌 쌓아 올리듯이 채우는 느낌이 있어요. 무엇이 담길지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바구니도 하나의 집이잖아요. 작은 집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기분이 들어요. 사실 어떤 짜임을 어디에 둘지, 정사각형으로 만들지 직사각형으로 만들지, 모서리를 어디에 어떻게 접을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설계해서 밑바탕을 준비하거든요. 집을 지어보지는 않았지만 집 짓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어요.


창작물에는 창작자의 현재 마음이 많이 반영된다고 하더라고요. 구름 님은 어떠세요?


저도 그런 편이에요. 그래서 일상을 잘 보내려고 노력하죠. 다행히 제가 둥글둥글한 사람이라 우울해지는 날이 거의 없어요(웃음). 물론 지칠 때도 있지만, 즐겁게 작업할 방법을 고민하죠. 이 일을 평생 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밥도 잘 지어 먹고, 좋아하는 친구들 만나서 추억도 쌓으면서 속도를 조절해요.


보통 여름에는 일상에 어떤 변화가 있나요?


5시 전후로 일어나 커피와 사과 한 쪽을 먹고 반려견 훈남이와 달릴 준비를 해요. 해가 뜨기 전에 4키로미터 정도 달리고 돌아와 텃밭일을 시작하죠. 그날 하루 수확해야 하는 채소를 따고,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 먹어요. 여름에는 먹을 게 너무 많아서 완두콩을 따자마자 바로 쪄서 먹기도 하고, 후무스를 만들어서 빵에 발라 먹기도 해요. 이후에 일정이 없으면 오전부터 대나무 작업을 하고, 작업하면서는 수확한 채소로 만들 메뉴를 고민해요. 제가 잘 챙겨 먹는 걸 좋아해서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러고는 해 질 무렵에 훈남이랑 마을을 산책하고 돌아와 9시 반이나 10시까지 작업하죠.



이 계절에 꼭 만드는 작품이나 하는 일이 있나요?


매주 몇 차례 나가는 수업이 있는데, 여름에는 수업을 쉬어요. 일종의 여름방학으로 몰입해서 무언가 만들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는 시기죠. 다른 계절보다 바구니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요. 봄에는 텃밭을 가꾸느라 겨울에는 나무를 하느라 바빴다면, 여름에는 그런 일들은 좀 줄이고 작업을 열심히 해요.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 계시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여기는 회색 건물보다 나무나 풀이 많잖아요.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을 관찰하는 일이 너무 즐거워요. 자연 자체가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는 게 훈남이의 영향도 있지만, 저 때문이기도 해요. 자연 속에서 산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이 풍경과 어울려 살고 싶어요. 자연의 시간이나 리듬에 맞춰서 저의 일상을 가꾸고 있죠.


그래서 그런지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계시기도 하죠.


맞아요. 이 공간에 있는 물건 중에는 재활용한 것이 많아요. 거실에 있는 작업대도 친구 작업실을 철거할 때 나무를 해체해 와서 만든 거예요. 바구니를 만드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대나무는 천연 재료라 자연으로 돌아가도 해가 되지 않거든요. 화목난로로 난방을 하는 이유도 불에 타면서 열에너지를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숲에서 나무들이 쓰러질 때 발생하는 공해가 같기 때문이고요. 숲에 가서 쓰러진 나무를 주워 와 공간을 데우는 용도로 사용하죠. 우리 땅에서 가꿀 수 있는 에너지를 사용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도 괜찮은 물건을 만들어요.



작업과 생활이 완벽히 분리되지 않은 환경에서는 무리하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구름 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집에 작업실이 있는 구조라 언제든지 작업할 수 있지만, 또 언제든지 쉴 수 있죠. 저는 보통 잘 안 쉬고 온종일 바쁘게 보내는데요. 생활과 일을 분리하기 위해 산책을 활용해요. 자연을 바라보면서 크게 숨을 쉬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훈남이랑 걸어요. 초여름에는 보리수나 앵두를 따 먹는 재미가 있고요. 하루의 끝에는 넷플릭스를 보면서 보람찬 하루에 대한 만족을 곱씹어요. 그것만으로도 지금 제게는 충분해요.


구름 님이 일상을 사랑하는 게 느껴져요.


네, 그래서 저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대나무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너무 좋아해서 사실 여행 가고 싶은 욕구도 별로 없어요. 심지어 여행을 가도 빨리 돌아가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이 일로 부자가 되진 않더라도 충분하게 먹고 살 수 있어서 기뻐요.


추구하시는 삶의 방식도 궁금해요. 분주한 도시의 시간과 어떻게 다른지요.


멀리서 숲을 보면 여유롭고 매일 비슷하게 느껴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청 분주하잖아요. 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울부터 준비하는 것처럼요. 어쩌면 저도 숲처럼 여유로워 보이고 또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겉보기엔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살기 위해 실은 매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답니다. 도시와는 다른 숲만의 분주함이 있는 것처럼 제 일상도 그래요.


구름 님의 작품이 각자의 생활 속에, 삶 속에 어떻게 쓰이길 바라나요?


누군가의 일상이 더 아름다워지길 바라는 마음이 커요. 바라만 보아도 기분 좋은 물건이었으면 좋겠고요. 메리 올리버의 책 중에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는데요. “시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이다. 시는 빈 바구니다. 삶을 그 안에 담고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시를 짓는 일이 빈 바구니를 만드는 마음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바구니를 사용할 누군가가 자신의 것으로 채워주길, 그래서 이 바구니가 누군가의 일상을 아름답고 단단하게 가꿔주길 바라요.



작업 초반과 지금이 다르듯이 미래를 상상했을 때 그려지는 모습이 있나요?


사실 저는 2주 간격으로 촘촘하게 계획해서 움직이는 편이라, 먼 미래를 계획해 본 적은 없어요. 어떤 모습으로 지낼지 잘 모르겠지만 대나무로 바구니를 만드는 일은 평생 하고 싶어요. 할머니가 되어도 대나무 바구니 만들고, 텃밭을 가꾸고, 밥도 잘 지어 먹으면서요. 손이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면 쉽게 불안해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구름 님은 현재에 계시네요.


오늘 하루를 즐겁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에요. 그런 오늘이 쌓이고 쌓여 나를 만들 거라고 믿고요. 어떻게 하면 현재에 있을 수 있는지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죠.


구름 님의 라이프스타일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무엇인가요?


자연스러움. 텃밭은 농부들이 부지런하게 가꾼 풍경이잖아요. 저도 자연과 어우러지기 위해 자연을 공부하고 일부가 되고 싶어요. 자연스럽게 그 풍경의 일부가 되기 위해 건강하게 지내야지, 열심히 만들어야지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LIFESTYLE LAB 매거진 Vol.1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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