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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티스트 임지빈

어디든 예술이 필요하다면

에디터 | 오은재

포토그래퍼 | 윤현기


위대한 작품 앞에 설 때면 형용할 수 없는 압도감에 걸음을 무르게 된다. 저 선 너머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할 것만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한 곰 한 마리가 우리 일상을 비집고 들어와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서 나를 만져보라고, 폭신한 품에 기대어 잠시 쉬어 가라고.


임지빈 작가의 대표작인 ‘베어 벌룬’은 화이트큐브를 벗어나 거리를 마음껏 누비며 지구를 횡단한다. 예술과 마음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서성이기만 하는 이들의 곁으로 성큼 다가간다. 파란 하늘 아래 자리한 곰 한 마리에게로 조금씩 가까워지는 순간, 수많은 이의 삶 속으로 아름다움을 띄워 보내는 마음을 헤아려보게 된다.


©임지빈


안녕하세요, 작가님.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조각과 설치 미술을 하는 임지빈입니다. 베어브릭을 차용해 현대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상반기 내내 바쁜 날을 지냈다고요. 다양한 곳을 동분서주하며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작년부터 국내외를 오가며 여러 작품을 선보였어요. 9월 초에 ‘2023 프리즈 서울’이 끝나자마자 바로 첫 해외 개인전을 위해 뉴욕으로 넘어갔고,  후에는 파리 레지던시에 머물며 작업했죠. 최근에는 한남동에서 작은 전시 하나와 판교 TECH-1에서 오아시스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요. 제가 올해로 활동한 지 16년 차인데요. 작년에 15주년을 맞이해 이라는 전시를 하면서 지금까지 제가 통과한 시간을 새롭게 정의해봤어요. 올해 5월 부산에서 열었던 를 통해 그 의미를 되짚어보고 다시 한 번 선보이게 되어 좋았죠.


매 순간 성실히 작업하신 덕에 ‘임지빈’ 하면 거대하고 말랑한 ‘베어 벌룬’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부지런히 일상에 미술을 들이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저는 대학생 때 작가로 데뷔했어요. 워낙 어릴 때부터 활동을 시작한 까닭에 초반에는 경험을 쌓기 위해 전시에 꽤 많이 참여했어요. 단체전까지 포함하면 1년에 20 ~ 30번 정도 한 것 같아요. 새로운 작업을 선보여도 매번 봤던 미술 관계자나 지인들, 소수의 컬렉터만 방문하는 걸 반복해서 접하다 보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좀더 많은 사람을 불러들일 방법을 모색하다가 생각을 바꿔서 제가 사람들이 있는 공간으로 직접 찾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일상적인 공간을 ‘순간 미술관’으로 바꿔보는 거죠. 이를 토대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딜리버리 아트’라는 단어를 생각해냈어요. 제 작품이 필요한 공간에 미술을 배달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임지빈


‘베어 벌룬’은 우리가 아는 친숙한 한국의 골목과 이국의 광장 곳곳에서 나타나곤 해요. 어딘가에서 거대한 곰을 마주쳤을 독자들을 위해 작가님의 작업 세계관을 보여주는 ‘에브리웨어 프로젝트’에 관해 들려주시겠어요?


‘에브리웨어 프로젝트’는 예술이 필요한 공간이라면 어디든 가기 위해 2010년부터 시작한 게릴라성 프로젝트예요. 지금도 1년의 절반 정도는 4미터에서 6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곰 모양의 풍선과 함께 해외 각지를 돌아다니고 있죠.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세웠던 공식 몇 가지가 있는데, 1년에 최소 3 ~ 5개 도시에 가려고 해요. 간혹 호텔에서 지내기도 하지만 되도록 에어비앤비처럼 일상과 가까운 공간에서 지내면서 그곳의 삶을 관찰하려고 하죠.


그렇게 오래 머무르다 보면 어떤 장면이 눈에 들어오던가요?


제 작품은 항상 어딘가에 끼어 있거든요. 크기가 워낙 거대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는 비좁은 장소에서 귀여운 모습을 자주 연출하는 편이에요. 예전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버스나 열차에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사람들을 보면 동질감이 들었어요. 모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싶기도 했고요. 현대인의 삶을 조명하고 응원하기 위해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유달리 골목처럼 협소한 공간을 잘 찾아내는 것 같아요.


©임지빈


2013년 롯데백화점 본점에 10미터 크기의 베어 벌룬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고요.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본사 큐레이터분이 2년 전부터 진행해왔던 에브리웨어 프로젝트를 알고 계시더라고요. 감사하게도 좋게 지켜봐 주시고 손을 내밀어 주셔서 처음으로 브랜드와 협업해 볼 수 있었죠. 그때만 해도 이런 작업을 하는 작가가 많이 없었어요. 참고할 만한 예시가 마땅치 않았던 상황이라 사내에서 진행에 관한 의견이 분분했어요. 풍선이다 보니 바람 불면 터지거나 화재로 인해 문제가 생길까 봐 우려하기도 했고요. 설득이 쉽진 않았지만 어떻게든 해보자 싶어서 큐레이터분과 함께 관계자들을 찾아 뵙고 안전에 문제가 없음을 알리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전시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반응이 정말 좋았죠. 덕분에 전국 투어도 하고, 서울 시청 광장에도 설치했으니까요.


작업을 설치하는 것부터가 모험일 것 같은데요. 우려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확신을 얻는 편인가요?


확신이 없어도 일단 저질러보는 편이에요. 벌룬과 설치 작업에 필요한 공구를 챙겨서 다니다 보면 신기하게 바라보는 분들이 있어요. 특히나 외국에서는 국내처럼 미리 협의하지 않고 현장에서 상황을 보면서 무작정 진행하거든요. 스트리트 아트의 문법을 따라 게릴라로 작업하다 보니 경찰서도 몇 번 가보고 여권을 뺏긴 적도 많아요. 언어가 능통하지 않아 수습하는 데 애를 먹긴했지만 지금은 모두 좋은 추억으로 남았어요. 예상치 못하게 벌어지는 일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은 없어요. 그럴 때일수록 그간 쌓아온 저의 데이터베이스를 좀더 믿어봤어요.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감이 있으니 리스크가 있어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죠.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계 없이 작업하신 만큼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예술의 힘을 실감했던 특별한 기억이 있나요?


베트남 하노이에서 했던 작업이 아닐까 싶어요. 재개발 구역에 작업을 설치하는데 아이들이 옆을 기웃거리더라고요. 처음 보는 물건에 관심을 보이다가도 제 눈치가 보였는지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작품을 다 설치하고 나서 자유롭게 놀라며 자리를 비켜줬죠.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와서는 장난감 대하듯 발로 차고 주물럭거리면서 즐겁게 놀더라고요. 놀이 공간이 부족한 지역이라 친구들이랑 마음껏 뛰어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제 작품이 잠시나마 놀이터가 되어준 거 같아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이런 공간에 나의 작품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죠. 앞으로도 미술을 접하기 어려운 공간에서 아이들에게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는 의지를 다지게 되었어요.


개인전 타이틀을 ‘ART FOR EVERYONE’이라고 정할 만큼 ‘모두를 위한 미술’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데요. 좀더 많은 이와 함께 아름다움을 누리고자 하는 이타적인 마음이 느껴져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타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목표로 작업하고 있지만 사실 ‘모두를 위한 미술’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많은 사람이 보러 오시는 풍경 이상의 무언가를 그려보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를 나누고자 인파가 모일 법한 장소에 작품을 설치하고, 관람객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마음이 점점 더 커져요. 현장에서 발생하는 우연한 장면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돌이켜 볼 때가 많아요. 그런 좋은 기억들로 인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게 되고, 지금까지 작업을 지속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여러 매체에서 “대중이 예술을 쉽고 편한 것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라고 이야기하셨던 것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책임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제가 ‘대중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미술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제가 느낀 장벽을 허물고 싶어서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가벼운 작품’을 만들고자 했어요. 너무 어렵지 않은 주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려고 했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끔요.


그렇다면 작가님은 예술과 어떻게 거리를 좁히셨나요? 도움을 주었던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요.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캐릭터를 따라 그리거나 만드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 미술부가 유명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진로를 정했죠. 제 고향이 부산이라 전시를 보려면 서울에 가야 했는데요. 다양한 갤러리를 탐방하며 배운 것도 많았지만 그와 비례해서 어딘가 불편한 감정을 겪기도 했어요. 학생이었던 제가 미술을 자유롭게 향유하고 소비하기엔 거리감이 느껴졌던 거죠. 그러던 중 학부생 때 ‘클라스 올덴버그’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어요. 일상의 사물을 거대하게 만들어 보여주는 설치 작업을 보고 이런 작품도 있구나 싶었어요. 작품에 담긴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있잖아요. 그에 크게 감명을 얻어서 공공미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보고 경험한 것이 쌓여 작가님만의 미감과 주제 의식으로 발현한 거네요.


늘 그랬던 것 같아요. 동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좋다는 게 있으면 꼭 해보려고 해요. 그런 트렌디함이 제 강점이기도 하고, 현시대와 소통할 수 있게 연결해 준다고 생각해요. 베어브릭을 차용해서 작업하게 된 것 또한 마찬가지예요. 2006년에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베어브릭’과 컬래버레이션을 해서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어요. 수십만 원을 호가하던 작품이 명품 브랜드와 협업했다는 이유만으로 가격이 천만 원 대로 훌쩍 뛰어오르는 걸 보며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죠. 당시 사회적으로 명품 소비에 관한 화두가 들끓던 시절이었거든요. 대학생이던 저 또한 또래 친구들처럼 꾸미는 걸 좋아했어요. 한정판 운동화와 멋진 브랜드에 푹 빠져 있었죠. 그런데 ‘샤넬브릭’의 인기를 접하면서 현대인의 소비 행태에 대해 의문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은 외적인 부분만 보고 누군가의 가치를 판단하곤 하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대중적인 베어브릭을 소재로 삼아 현대 사회의 다양한 면을 조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데뷔가 빨랐던 만큼 작품 활동을 지속하면서 작업에 관한 가치관이 조금씩 확장되었을 것 같은데요. 지난해 이라는 개인전을 진행하며 15년간 이어온 작업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고요.


아내인 구나현 작가와 작업실을 함께 쓰고 있어요. 어느 날 작업하던 중에 구나현 작가가 제게 ‘매일 같은 거 만들면 지겹지 않아?’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때 ‘나는 매일 같은 작업을 반복하지만, 다른 감정과 생각으로 흙을 빚는 것 같아’라고 대답했어요. 저는 워낙에 엉덩이도 무겁고, 매일 같은 걸 먹어도 잘 안 질리는 스타일이라 특별히 의식해 본 적이 없었는데요. 그 질문 덕분에 그간 해왔던 일이 정리되더라고요. 손수 흙을 빚고, 모양을 떠내고, 갈아내는 과정을 습관처럼 해도 매 순간 다른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대했던 것 같아요. 그 시간과 마음이 쌓여 ‘지금의 모양’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작업에 쏟아부은 시간과 힘, 감정을 헤아리다 보니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고요.


‘노동의 가치’에 관한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챗GPT가 나오면서,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요. 저 또한 그런 고민을 해본 적 있거든요. 기계의 힘을 빌려서 무엇이든 쉽게 이룰 수 있는 시대에 땀 흘리며 노동에 임하는 일에 대해서요. 역설적으로 그런 시대일수록 ‘성실하게 작업하는 일’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 또한 직장인처럼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작업실에 출근하거든요. 직업만 다를 뿐이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노동하면서 돈을 벌고 자아실현을 하려는 건 남들과 다를 바 없이 똑같다고 생각해요. 매일매일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손으로 빚어낸 시간이 새삼 소중하게 여겨졌어요. 15년 간 최선을 다했으니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었어요. 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이전에 작업했던 ‘헌팅 트로피’를 차용한 작품 15개를 전시한 뒤, <나를 위한 15개의 트로피>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가을이면 전국 최대 규모 미술 축제인 ‘미술 주간’이 개최되는데요. 이 주간을 맞이해 국제적인 아트페어와 더불어 각양각색의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죠. 이전과 비교해 대중의 주목도가 달라진 만큼 작가님도 열기를 실감하실 거 같아요.


다들 예전보다 열린 마음으로 바라봐 주시는 것 같아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시를 보러 다니는 걸 보면서 다양한 관람객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껴요. 세계 미술계에서도 우리나라 미술 신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잖아요. 유수의 빅 갤러리도 많이 들어오고, 좋은 작품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기도 했고요. 그 덕분에 미술 신이 이전보다 훨씬 더 다채로워진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죠.



‘2023 프리즈 서울’에선 패션 유통사와 협업해 작품을 선보였죠. 언제부턴가 국내 패션 업계 또한 외국의 수많은 브랜드처럼 미술인과 손을 잡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요. 작가님도 다양한 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고요.


이 모든 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연결되어 있기도 해요. 대중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채널의 힘을 빌리려 했던 것 같아요. 미술만 다루는 곳에서 제 작업을 공개하면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릴 순 있겠지만, 아무래도 노출되는 범위는 좁아지겠죠. 미술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설득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브랜드와 협업하는 편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번 더 보여줄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니까요.


작년 가을에는 파리 시떼 레지던시에 머무르며 작업하셨다고 들었어요. 문화 예술적 자원이 풍부한 도시인 만큼 많은 걸 느끼고 오셨을 것 같아요.


좋은 기회로 파리 시떼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되어 3개월간 머물렀어요. 처음에는 마냥 좋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괜히 조급해지더라고요. 원래 하던 방식의 작업을 이어가기엔 한계가 있어 실질적으로 작업을 하지 못했거든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쉬면서 환기를 해보자 싶다가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보니 그조차도 쉽지 않았어요. 대신 전시를 많이 보러 다니면서 아이디어 스케치를 병행했어요. 파리에선 실험적인 작품들도 재미있게 봐주시더라고요. 완성도가 어떻든, 작업의 형태나 의미가 어떻든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관람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어요. 우리나라 또한 좀더 다양한 작업이 존중받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시도할 계획인가요?


파리에서 지내는 내내 한국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불안’에 대해 골몰했어요. 이를테면 우리는 무언가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크게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잖아요. 지하철이 제시간에 오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진 것처럼 반응하고요. 그런데 파리에서 지내다 보니까 완전히 다른 세상이더라고요. 그곳에는 또 다른 위협과 스트레스가 존재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예민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그곳에서는 통하지 않는 걸 보며 문화적 차이를 느꼈어요. ‘무엇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싶어서 요즘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면 다들 손에서 핸드폰을 놓질 못하잖아요. ‘매체가 쏟아지고 있다’라는 의견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너무나 심하게 급증한 것 같아요. 저도 습관적으로 숏폼이나 콘텐츠를 접하는데 이것들이 오히려 나를 계속 불안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벌룬 작업으로 이를 표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터지기 직전의 찰나’를 구현하고자 연구 중이에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예술이 우리 삶에 필요한 이유가 궁금해졌어요. 예술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올덴버그의 작품을 보고 감명받았듯이 누군가는 제 작품을 보고 어떤 기운을 받기도 하겠죠. 그렇지만 그게 삶에 큰 변화를 줄지는 잘 모르겠어요. 단지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미술을 즐기면서 좋은 기억을 쌓아가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좋은 에너지를 받은 만큼 사람들과 재미있는 경험을 나누고 싶거든요.


임지빈 작가님의 라이프스타일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요?


시행착오’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계획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 시행착오를 더 많이 겪곤 해요. 작가로서 활동한 지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뜻밖의 변수가 재미를 불러오는 것 같아요. 그렇게 에피소드가 쌓이는 것도 즐겁고요. 어쩔 땐 제가 하는 일이 공연처럼 느껴져요. 연극에서는 실수 또한 극적인 요소가 되잖아요. 제 작업도 그런 장면이 더해질수록 더 다채로워지는 것 같아요.




LIFESTYLE LAB 매거진 Vol.1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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