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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오늘의 파도를 기다리며

에디터 | 오은재

포토그래퍼 | Hae Ran

장소 제공 | 라인웍스 서울, 카페 소르비


여름이면 사람들은 복잡한 일상을 뒤로하고 바다로 향한다. 수평선 앞에 서서 삶의 무거운 선택을 잠시 잊는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 무수한 선택지를 마주한다. 미끄러지는 물결의 언어를 해석하며 심신의 주파수를 맞추는 시간. 그중 무엇에 올라탈 것인지 가늠하고 힘껏 부딪히는 과정에서 인생의 의미를 길어 올린다. 나를 믿고 택한 이 순간의 파도를 후회 없이 즐기기 위해, 그는 오늘도 부지런히 스스로를 단련한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워낙 다양한 활동을 해 오셨는데, 요즘은 스스로 어떻게 소개하는지요?


저는 요일마다 하는 일이 달라요. 월요일에는 카페에서 커피를 볶고, 글을 쓸 때는 작가, 방송을 할 때는 방송인, 여름에는 서퍼가 되기도 해요. 때로는 한량처럼 지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지금처럼 대외적인 자리에서 절 소개할 땐 ‘팝 칼럼니스트’라고 말해요. 처음으로 저 자신을 정의했던 직업이라 애착도 크고, 다양한 활동을 포괄할 수 있어 편하거든요.


프로 N잡러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나요?


저는 늘 제 인생을 ‘옆문 인생’이라고 말해요. 항상 뭔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두드리면, 정작 원하는 문 말고 옆문이 열렸거든요. 팝 칼럼니스트가 된 것도 원래 드러머를 꿈꿨는데 학원에 갔더니 소질이 없다고 해서 포기하고 이 일을 하게 된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시도할 수 있었던 건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뭔가를 시작할 때 ‘안 되면 다른 걸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사람이 시작하기도 전에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워하며 시도조차 하지 않아요. 그런데 사실 실패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건 아니잖아요. 기껏해야 돈을 좀 못 벌겠죠. 그러면 덜 쓰고 살면 돼요(웃음). 일은 인생의 일부일 뿐이니 여유롭게 생각하려 했죠.


계속해서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게 만드는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네요.


아직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나요. 궁금한 게 생기면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되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학구파인 건 아니고요. 오히려 학생 때는 해야 할 공부엔 관심이 없었어요. 친구들이 교과서나 전공서를 볼 때 저는 전혀 상관없는 음악과 영화, 책 같은 거에 파고들었죠. 그때부터 쌓인 관심과 호기심이 결국 제 취향이 되었고, 그걸 바탕으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죠.


호기심 또한 체력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신체적 웰니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으니, 평상시에 건강한 생활 습관을 얼마나 실천하시는지 궁금해지네요.


저만의 루틴이 있어요. 일주일에 세 번은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하루에 두 끼만 먹어요. 보통 운동을 마친 후 11시쯤 되어서야 첫 끼를 챙겨요. 이때 하루 중 가장 좋은 영양소를 충분히 저축해 두는 편이에요. 그러면 저녁이 좀 부실해도 버틸 수 있더라고요. 저녁에 약속이 있어 야식을 먹더라도 다음 날까지 최소 12시간 공복을 유지하려고 해요. 출출하면 바나나나 사과 하나 정도 챙겨 먹지, 군것질은 거의 안 해요. 커피도 하루 한 잔 정도만 마시고요. 건강한 습관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운동이나 건강 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순간이 있나요?


살다 보면 뜻대로 안 풀릴 때가 있잖아요. 흥미로운 건, 운동하는 사람들은 삶을 재정비할 때 가장 먼저 헬스장으로 향해요. 저도 바빠서 운동을 거르다가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은 순간에는 곧바로 운동화를 신고 나가서 달려요. 운동은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어요. 내 삶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선언 같은 거죠.


어릴 때부터 운동과 친하셨다면서요. 지금도 다양한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긴다고 들었는데,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한 종목은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때는 육상 선수였고, 고등학교 때는 유도부였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일을 업으로 삼았지만, 여전히 몸 쓰는 일에서 오는 쾌감을 즐겨요. 등산, 암벽 타기, 복싱 다 해봤는데 그중 스쿠버다이빙을 가장 오래 했어요. 30대 초반부터 했으니 다이빙 횟수로만 따져도 300번은 넘을 거예요. 처음 배울 때 강사님한테 “왜 스쿠버다이빙을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여행 좋아하세요? 지구의 70퍼센트는 물입니다. 죽기 전에 한번 탐험해 보시죠.” 그 말이 정말 인상적이더라고요. 그렇게 수면 아래 펼쳐진 야생의 세계에 완전히 매료됐죠.



매년 여름마다 파도를 타러 떠나신다고요. 서핑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 거예요?


다시 태어난다면 명랑한 돌고래로 환생하고 싶을 정도로 물을 좋아해요. 도시에 살면서도 늘 바다를 동경했죠. *피크(Peak) : 파도의 가장 높은 부분 파도가 높은 날엔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없으니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서핑을 배우면 되겠네’ 싶었어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제 라이프스타일이 되었죠. 서퍼가 된다는 건 자연주의자로 살아가는 것과 같아요. 무엇보다 보드 위에서 파도를 기다리다 보면 구도자의 마음이 되곤 하죠. 바다는 제가 조종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그 점이 위로되기도 하고, 인생을 다시금 바라보게 만들죠.


운동이란 신체를 컨트롤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죠. 하지만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특히 서핑은 바다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스포츠라 더 어렵지 않나요?


한 패션 모델에게 ‘운동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었더니 ‘인생에서 내 마음대로 되는 건 내 몸뚱이 뿐이다’라고 답하더라고요. 저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그렇지만 서핑하면서는 오히려 ‘포기하는 법’을 더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마음 같아서는 저도 실력자들처럼 영화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파도를 타고 싶지만, 거기까지 가지는 않아요. 제 나이에 그렇게 무모하게 뛰어들었다가는 죽을 수도 있거든요(웃음). 그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파도를 즐기는 법을 터득하는 거죠.


취미를 살려 해설까지 도전하셨어요. 직접 파도를 타는 것과 경기를 해설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일 텐데요. 어떻게 시도하게 되었나요?


서핑을 마흔 넘어 시작하다 보니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왜 안 될까?’ 싶어 답답한 마음에 관련 영상과 책을 열심히 찾아봤어요. 사실 운동 잘하는 사람들은 이론 공부를 거의 안 해요. 그 시간에 몸으로 익히면 되니까요. 하지만 저는 늦게 시작했으니 그렇게라도 원리를 이해하고 몸에 적용해 보려고 했죠. 배운 대로 했는데도 안 되면 집에 돌아와 왜 실패했는지를 다시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끊임없이 연구했어요. 그걸 계기로 월드 서프리그가 국내에서 개최되었을 때 해설을 맡게 된 거죠. 잘 타지는 못해도, 반복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전문가와 대중 사이의 중간 다리를 놓는 역할은 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중년이 된 후에 시작하셨다니 정말 놀라워요. 유튜브에서 “나이 50에 서핑? 눈치 보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신 것이 떠오르네요. 많은 분에게 용기를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거든요.


많은 사람이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데, 사실 남들은 저에게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어요. 잠깐 쳐다볼 수는 있어도 고개를 돌리면 누가 있었는지 기억도 못 해요. ‘저 사람들은 나한테 별 관심이 없는데, 왜 나는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야 하지?’ 싶어요. 혹여나 누군가 ‘나잇값 해라. 니 나이에 뭔 서핑이냐!’ 이야기해도 귀담아들을 필요 없어요. 규칙을 어기는 것만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된다고 봐요.




서핑에도 여러 가지 룰과 문화가 있을 텐데요. 최근 2030 세대가 서핑 신에 유입되면서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서핑의 제 1 원칙은 무조건 한 파도에 한 명만 올라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피크(Peak)* 가까이에 있는 서퍼에게 우선권이 주어지죠. 서울에서 온 외지인들은 바다에 가면 파도를 선점한 지역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해요. 왜냐하면 서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로컬리즘’이거든요. 쉽게 말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의 주도권을 갖는다는 의미죠. 지역민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잖아요. 누군가 내 안방에 들어와서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듯, 서핑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이게 기본적인 룰인데, 초심자들은 잘 모르다 보니 안 지키는 경우가 많아요.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기거나 사고가 발생하는 걸 보면 안타깝죠.


*피크(Peak) : 파도의 가장 높은 부분


다양한 세대가 조화롭게 서핑을 즐기기 위해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점이 있을까요?


저는 2030 친구들이 노는 쪽에는 가지 않으려 해요. 서핑을 하는 이유 중엔 또래끼리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 목적도 있을 텐데, 거기에 자꾸 나이 든 사람이 눈치 없이 끼어들려고 하면 서로 불편해지는 거죠.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나이 든 사람들도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제 또래 친구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해요. “우리가 쫓아다니면 꼰대고, 그 친구들이 먼저 우리한테 다가와 뭔가 물어봐야 멘토가 되는 거야.” 그러니 젊은 친구들의 문화는 그 자체로 존중하되, 우리는 우리끼리 즐기자는 얘기를 자주 하죠.



최근에 새롭게 시도한 운동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이를 통해 자신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을까요?


요즘 일이 좀 많아서 쉬고 있지만, 두 달 정도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원정혜 선생님 요가 클래스를 들었어요. 나이가 들어가는데 계속 격렬한 운동만 하기엔 무리가 있겠다 싶었거든요. 이제껏 운동 신경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가는 정말(웃음). 제가 얼마나 몸치였는지 새롭게 깨달았어요. 이렇게나 안 되는 동작이 많다니. 여러 사람과 함께 수업을 듣다 보면 다들 열심이구나 싶어요. 심지어 요가에 인생을 건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분명 이 운동에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그걸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아직 어디 가서 요가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준은 전혀 안 되지만요. 죽기 전에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 배우가 했던 전갈 자세 한번 성공해 보고 싶네요.


문득 우리의 삶에 신체 활동이 꼭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네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려면 ‘무겁다’와 ‘힘들다’라는 감각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 무거우면 내가 들 수 있는 무게로 바꿔야죠. 무거운 걸 억지로 들다가 다치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없게 되니까요. 힘든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냥 견뎌야 하고요. 이걸 삶에도 적용해 볼 수 있어요. 내 앞에 놓인 어떤 상황이 나에게 무겁기만 한지, 아니면 힘들지만 견딜 만한 것인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해요. 운동하는 과정에서 이 두 감각을 깨우치게 되는 거죠. 찰리 채플린이 남긴 명언 중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라는 말이 있어요. 저는 운동이 삶의 감각을 복원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제까지는 4키로미터 밖에 못 뛰었는데 오늘은 5키로미터를 뛰었다면 그 변화가 얼마나 대단하게 느껴지겠어요. 서핑도 그래요. 내가 탈 수 없다고 생각했던 파도 위에 딱 올라선 순간 한 단계를 뛰어넘었다는 기쁨이 샘솟죠. 그래서 그런지 운동하면 우울한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그렇다면 오늘부터 건강하게 살기로 결심한 누군가에게 쉽게 해볼 만한 운동 하나를 추천해 주신다면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하루에 세 번 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다 오라고 해요. 계단 오르기가 실은 제일 좋은 운동 이거든요. 예전에는 27층 정도 되는 아파트 계단을 한 번에 오르기가 그렇게 힘들었어요. 그런데 몇 번 하다 보니 한 번도 안 쉬고 꼭대기 층까지 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런 소소한 변화를 체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태훈 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결국 웰니스란 ‘어떻게 즐겁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과 닿아 있는 것 같네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아침에 눈 뜨는 게 즐거우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해요. 내 분수에 맞게 살면 인생이 그보다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제가 프리랜서로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그렇게 살면 불안하지 않아요?’였어요. 우리의 어깨 위에 올라탄 불안이라는 곰은 죽을 때까지 내려오지 않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곰을 너무 뚱뚱하게 만들지 않는 거예요. 무게에 짓눌리지 않게끔요. “인생이 왜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냐? 인생은 원래 힘들어. 이게 기본값이야.” 쇼펜하우어는 그렇게 말해요. 만약 정말 인생이 힘든 거라면, 그 속에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즐거움이 뭔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고양이를 좋아해서 길 가다가 동네 고양이를 만나면 꼭 말을 걸어요. 가끔 여유가 되면 편의점에서 캔을 사 와 건네는데 맛있게 먹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런 즐거움이 주변에 꽤 많아요. 볕 좋은 날 걷고, 뜻이 맞는 친구들과 소소한 농담을 주고받고, 한 끼 맛있는 걸 챙겨 먹고. 생각해 보면 행복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우리는 왜 몇 평짜리 아파트와 엠블럼이 박힌 차에 그렇게 사활을 거냐는 말이죠. 그건 자본주의가 만든 미신에 불과해요. 제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여행용 가방 하나에 들어갈 만한 짐을 가지고 사는 거예요. 필요 없는 것들을 욕망하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그 시간에 낮잠을 자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하러 다니는 편이 훨씬 좋죠.


오늘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태훈 님의 라이프스타일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요?


저는 그냥 물 흐르듯 살고 싶어요. 굳이 나 자신이랑 싸우고 싶지 않아요. 세상도 나를 괴롭히는데, 나라도 스스로를 좀 너그럽게 봐줘야죠(웃음). 내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젊은 날의 특권이고요. 저는 이제 뭘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신 뺄셈을 할 줄 알아야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씩 지우고, 할 수 있는 것에만 동그라미를 치면서 사는 거예요. 이건 앞서 말했듯 파도가 가르쳐 준 것이기도 해요. 내 실력과 마음에 맞는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우선 내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거요.






LIFESTYLE LAB 매거진 Vol.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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