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 현예진
포토그래퍼 | Hae Ran
오랜 시간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건, 반복해 서로를 선택하는 일이다.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동료로, 때로는 가족으로. 브로콜리너마저는 그렇게 20년을 한 팀으로 살아냈다. 이들은 삶을 닮은 음악을 매개로 긴 여정을 함께했다. 함께 겪어낸 무수한 계절 속에서 길어 올린 다정한 노랫말은 한 사람의 일상에, 어떤 날의 마음에 조용히 닿았고 그렇게 브로콜리너마저는 많은 이에게 위로가 되었다. 이들은 스스로의 방식으로 증명했다. 팀을 이루는 일은 합주처럼 서로의 다름을 견디고, 이해하고, 끝내 존중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크고 작은 위기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며 차근히 앞으로 나아가는 힘, 그 안에서 자라난 단단한 마음이 브로콜리너마저라는 이름을 지탱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각자 혹은 팀으로서 최근 가장 몰두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동혁 7월 공연과 다음 주에 있을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요즘 사진에 취미가 생겨, 일상에서 작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사진을 찍어요.
류지 상반기에 계속 바빴다가 요즘은 여유가 생겨서 쉬는 일에 몰두하고 있어요. 7월 장기 공연에 대비해 좋은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요. 운동도 하고, 건강하게 차려 먹고, 최대한 머리를 비우며 지내고 있어요.
덕원 저는 곁눈질 담당이라 팀으로서 재밌는 일과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새로운 곡이나 작업일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바리스타 대회에 나가게 돼서 틈틈이 연습하고 있어요. 밴드 활동이라는 게 할 일이 많을 때도 있지만, 흐릿할 때도 많거든요. 직장인이라면 주어진 일이 있지만, 우리는 직접 만들어야 해요. 또 그 일들이 예상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기 때문에, 작은 취미에 관심을 갖는 것도 생활의 텐션을 유지해 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더라고요.
잔디 개인적으로 1년 정도 가족 관련된 일로 외국과 한국을 오가고 있어요. 가족 구성원으로, 밴드 구성원으로 개인의 일에서 놓치는 것이 많지 않게 하는 것 자체로 노력이 필요하더라고요. 요즘은 그 부분을 가장 신경 쓰고 있어요. 어쩌면 그저 삶을 지탱하는 것에 몰두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올해로 밴드 결성 20년 차입니다. 서로를 ‘지켜본 시간’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동료를 넘어선 감정이 있을 것 같아요.
류지 충분히 돌아보려면 공백이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거의 매주 만났어요(웃음). 딱히 돌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밴드라는 게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가족보다 훨씬 더 자주 만나고, 단순히 직장 동료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친구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서 신기한 관계라고 생각해요.
덕원 솔직히 말하면 어렸을 때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옛날 사진을 보면 우리가 너무 어려서 새삼 낯설기도 하고요. 류지가 스물한 살 때 밴드에 합류했는데요. 가끔 전도유망한 친구를 밴드로 끌어들여서 인생의 길을 틀어 놓지 않았나 싶기도 했어요(웃음). 지금은 희석됐지만, 한때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도 있던 거 같아요. 지금은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분명 쉽지 않은 부분도 있을 텐데, 류지의 말처럼 친구도 아니지만 단순한 동료도 아닌, 끈끈한 사이로 남아 있는 게 흥미롭고요.
잔디 오래 해서 생기는 익숙함은 절대 무시하지 못할 것 같아요. 오랜 친구 같은 순간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지내왔기 때문에 관계가 유지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서 서로 신경을 써 주고요. 최근에는 새로운 멤버가 들어와서 재미있는 일이 부쩍 늘었어요.
작년에 동혁 님이 정식 멤버로 합류하셨지요. 팀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동혁 저는 시간, 계획, 순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인데요. 밴드 합류 후 제 연간 계획에 뼈대가 생겼다는 점이 가장 와닿아요. 반면 느리고 천천한 밴드의 분위기를 체득하기도 했어요. 저는 내일 어떤 시간에 뭘 하고 있는지 예측할 수 있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거든요. 맨 처음에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자주 노출되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조금씩 적응하고 있어요.
덕원 저희는 세부 계획을 세우지 않는 스타일이었는데, 동혁의 합류 후 많이 보완됐어요. 우리 밴드에도 드디어 차분하고, 꼼꼼하고, 계획하는 사람이 합류한 거죠(웃음). 잔디에게 추진력이 있다면, 동혁에게는 계획된 실행력이 있어요.
류지 우리 밴드에 기타리스트가 생겨서 좋아요.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리되지 않는 내용을 나눌 때도 있는데, 그 사이에서 동혁이 정리해주는 역할을 해요. 그게 의지가 되기도 하죠.
잔디 식당 선택과 커피 문화에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어요(웃음). 덕분에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분위기로 즐겁게 작업할 수 있고요. 동혁이 기존 3인과는 또 다른 성격이라 서로 보완되는 부분이 많아서 좋아요. 특히 무언가를 챙길 때요!
그토록 오랜 시간 팀을 유지해 오면서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을 텐데요. 어떻게 이겨냈나요?
덕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 과정에서 큰 문제없이 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서로 욕심부리지 않아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이런저런 변화에 필요한 선택을 하고, 구성원이 바뀌는 일도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어요. 가끔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시야가 좁아지기도 하잖아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멤버가 각자 배려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잔디 최근 프로 음악인으로 활동한다는 것에 대한 무게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어요. 참 많은 내·외부적인 갈등을 딛고 이 자리까지 왔는데요. 돌이켜보니 힘든 순간을 스스로 지탱하는 힘은 내 일을 온전히 일로 바라보고 해결하기 위해 몰입하는 것이더라고요. 힘들다고 소통을 멈추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요. 일과 관련된 여러 감정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판단력도 흐트러지고 대처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아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쉽지 않지만요.
세월이 흐르면서 가벼워진 것과 오히려 무거워진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덕원 저는 일단 *페달 보드가 가벼워졌고요(웃음). 공연을 하든, 음악을 하든, 작업을 하든 물리적으로 몸을 가볍게 하려고 해요. 예전에는 좀더 좋은 장비나 악기가 갖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줄었어요. 반면 본질적인 것을 생각하느라 머릿속은 좀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없을 때는 쉽게 길을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해 놓은 것들로 인한 제약이 존재하니까요.
*페달 보드 : 기타 연주 시 음색 전환을 돕는 기기
류지 저는 일단 삶에 대한 의지가 무거워졌어요. 젊을 때는 삶의 의지가 강하지 않아서 막살았던 것 같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관객들과 주변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됐어요. 반대로 음악 자체에 대한 생각은 가벼워졌어요. 젊을 때는 음악이 전부 같았는데, 이제 음악을 그저 음악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동혁 모든 일은 내가 바라보기 나름이니, 최대한 가볍게 생각하려고 해요. 관계, 일 모든 면에서요. 앞으로 나이 들면서 점점 더 책임이 무거워질 테니 미리 좀 가볍게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해요. 지나고 보면 심각하게 느꼈던 문제들도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잊힐 테니까요.
개인적으로도 각자가 어떤 성장과 변화를 겪으셨을 것 같아요. 팀의 변화와 개인의 변화는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나요?
덕원 사실 저희 팀은 큰 변화 없이 잔잔하게 유지되고 있어요. 본질적인 성격이 변하지 않다 보니, 솜사탕처럼 그 위로 쌓여 조금씩 모양은 바뀌었지만 안에서 나무 막대기를 돌리는 건 비슷해요. 음악이라는 게 가끔 대단해 보여도 허무할 때도 있거든요. 나에게 큰 의미인 것 같아도 어떤 순간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해요. 그런데 계속해 나가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더라고요. 계속 노래하고, 이렇게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여기 있구나 싶어요. 저희 멤버는 모두 내성적이고 차분한 편이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편인데요. 20년간 활동하면서 저희 안에 자부심과 단단함이 생긴 것 같아요.
잔디 브로콜리너마저의 가사를 보면 어느 정도 성장과 변화가 보이는 것 같아요. 멤버들이 긴 시간 동안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고요. 지금까지 해 온 이야기와 스스로의 인생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 개인으로는 밴드를 하는 시간의 반 넘게 두 아이와 함께하고 있는데요. 아이를 키우면서 직업을 영위하는 게 당연해야 하는데, 또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잖아요. 좋은 사례를 남기고 싶어요.
밴드와 관련된 다양한 실무까지 모두 직접 하고 계시죠. 팀 내에서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덕원 저희는 일종의 레이블 역할을 같이 하는 셈이에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농산물 직판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시장의 룰과 다르게 나만의 룰로 만들고 팔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어요. 물론 성공적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기회가 생길 가능성이 있죠. 저희 같은 팀이 시장에 들어간다고 했다면 지금처럼 활동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고 생각해요. 장점은 과정에 대한 이해가 높고 협업에 부드러워진다는 점. 단점은 바쁘거나 온도 차가 큰 일에는 그때그때 모드를 전환해야 한다는 점이겠네요.
잔디 팬데믹 이후에 공연 오픈이나 섭외 등의 실무적인 일은 제가 많이 맡아서 해요. 원래는 운전까지 도맡았는데 작년부터 모두 차가 생겨서 너무 좋아요. 일이 많은 게 밴드로선 좋은 일이지만, 절대적인 시간을 투입해야 해요. 음악인으로서의 나, 실무자로서의 나 사이에서 잘 조절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죠. 관련된 장단점을 개인적으로 나누고 싶기도 해서 최근에는 강의를 열고 있어요.
동혁 가장 먼저 덕 쌤(덕원)이 아이디어를 많이 내요. 가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는데요. 그러다가 괜찮은 아이디어를 발견하면 잔디 쌤이 퇴근길에 진행해요. “어디 어디 알아보면 좋을 것 같아서 통화해 봤는데…”라며 일이 시작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갑자기 스케줄러에 미팅이 잡히고, 답사가 잡혀 있어요. 저와 류지 쌤은 쫓아가고요.
좋아하는 일을 지속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죠. 팀을 계속 이어오게 하는 근본적인 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덕원 밴드를 지속하는 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걸까 잠시 고민했어요. 대부분 밴드를 본업으로 하고 있으니, 좋아하는 일을 지속한다고 생각할 텐데요. 직업으로서 인디밴드는 일로 이뤄진 직장 생활 파트와 ‘기타 치는 거 재밌다’라는 파트가 나뉘어 있어요. 그사이 겹치는 부분이 좋은 거고요. 하지만 굉장히 많은 부분이 겹치지 않아요. 이를테면 공연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만드는 일은 완벽하게 일이죠. 퇴근하고 곡을 쓰는 분과 거의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일로 만들어 낸 결과가 제가 좋아하고 즐거워서 만든 곡이니까, 그 자체로 동력이 돼요.
잔디 세 가지 정도가 떠올라요. 첫째는 음악을 들어주시는 분들, 공연에 찾아와 주시는 분들 그 자체이고요. 둘째는 밴드 활동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 셋째는 밴드 활동이 메시지적으로도 활동 과정으로도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함께 갈 수 있다는 부분이에요.
동혁 멤버들 말에 공감해요. 다른 지점을 말해보자면, 팬들의 사랑과 응원이 직장 상사의 인정처럼 느껴지곤 해요. 한 분 한 분 이렇게 눈을 마주쳐 주거나, SNS로 공연이 좋았다고 위로 받았다고 말씀해 주시면 거기서 오는 성취감이 있어요.
특히 마음에 드는 공연의 조건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우리 오늘 정말 잘했다!” 하는 기준과 그랬던 공연이 있다면요?
덕원 저는 자신의 흠을 잘 찾는 사람이라, 항상 잘했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세부적으로 좋은 부분은 항상 있죠. 어떤 장소에서 연주하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기도 하는데요. 그때마다 좋은 느낌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이 외에도 공연의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한 호흡으로 아름답게 잘 마무리되는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요. 예정된 공연 시간을 잘 지켰거나, 멘트 같은 것들을 계획한 대로 해냈을 때도 기뻐요.
류지 실수가 없는 공연이요. 저는 공연 중에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잠을 못 잘 정도로 괴롭더라고요. 세트리스트를 짠 대로 분위기가 잘 흘러가 관객들이 좋게 호응해 줄 때 잘한 것 같고요.
여러 번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이나 감정이 있나요?
잔디 매번 하는 공연 준비가 항상 새로워요. 주변 상황이 변하고 사람도 변하기 때문에 같은 게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만 또 그에 대한 대처가 유연해지는 것도 있어요. 감정적으로는 20대와 30대를 거치며 40대에 훨씬 안정감이 생겨서 좋아요.
류지 저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긴장하는 편이에요.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완전히 편안해지진 않더라고요. 긴장 때문에 졸리기도 하고요. 리허설을 한다고 해도, 관객들이 있는 무대 위에 올라갔을 때 또 어떤 공연이 될지 모르잖아요.
동혁 스태프 분들은 제가 공연 직전에 긴장을 아예 안 하는 줄 아시더라고요. 티를 안 내서 그럴 뿐이지 여전히 긴장해요. 공연 끝나고 난 후의 기분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고요. 공연할 때면 감각이 예민해지는데, 공연이 끝나도 그게 잘 진정이 안 돼요. 대중교통을 타고 퇴근할 때 힘들기도 하고, 속닥거리는 소리까지 유독 크게 들리기도 하죠. 이상한 허무함과 공허함을 느끼곤 해요.
덕원 사실 이런 것들은 저희끼리 기본적으로 공유하는 감각이긴 해요.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이게 자신만의 특별한 어려움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끼리 이야기하기 좀더 조심스러워지는 게 있어요.
제주, 통영, 광주, 전주 등 상반기에 다양한 지역에서 공연하셨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덕원 광주에 갔을 때 다 같이 오리탕을 먹었어요. 첫날 예약 없이 갔다가 낭패를 보고, 다음 날 예약하고 갔던 기억이 있어요. 박보검 배우를 닮은 사장님이 굉장히 친절했죠(웃음). 예전에는 어디를 가면 빨리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이제는 맛있는 것도 한 그릇 먹고 와야지 싶더라고요. 공연을 많이 다니는 선배들 보면 지역 맛집을 잘 알고 있어서 항상 신기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잔디 광주에서 티켓 배송에 작은 사고가 있어서 광주 챔피언스필드 야구경기장에 가서 잘못 온 택배를 드린 게 기억에 남네요. 또 멤버들이 다들 맛있는 것을 좋아해서 잘 먹는 하루하루가 모두 소중했어요.
류지 제주도 귤 농장에서 공연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농장도 신기하고, 천혜향 나무의 향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가족 단위 관객이 많이 오셔서, 공연하는 와중에 아이들이 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노는 모습도 보기 좋았어요.
브로콜리너마저는 타 밴드에 비해서 지역 공연이 많은 편이잖아요. 지역을 자주 찾는 계기나 배경이 궁금해요.
덕원 사실 공연 보러 멀리 오는 게 힘들잖아요. 반대로 저희가 가면 편하게 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은 이유는 지역에 인프라가 부족해서 공연을 할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현장이 열악하거나 완벽하지 않더라도, 저희가 직접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은 준비해서 한 걸음 더 다가간 셈인 거죠. 저도 지역 출신인데, 공연을 보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제 또래들을 보면, 어릴 때 크라잉넛이 공연 온 걸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갈 수 있을 때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팬들과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 오셨잖아요. 그만큼 쌓인 서사가 있을 텐데,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요?
덕원 2010년부터 저희 음악을 듣던 팬들은 어느덧 아이를 키우고 계시더라고요. 아이들이 커서 유치원 다니는 걸 보면서 시간이 진짜 빨리 흘렀구나 싶어요. 우리가 20년 넘게 활동하면 초기에 우리 음악을 듣던 분들은 한동안 못 올 거라는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직장 생활과 육아 같은 일로 바쁠 테니까요. 5년, 10년이 지나서 아이들이 다 크고 삶에 여유가 생길 때까지 버텨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거든요. 이제 그 생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구나 싶어요.
류지 초기에 계속 와주신 팬이 꾸준히 오시다가 중간에 안 오신 적이 있어요. 마음에 변화가 생겼나보다 했는데, 10년 만에 다시 돌아오신 거예요. 반갑기도 하고, 잘 지내셨구나 싶기도 해서 울컥하더라고요.
동혁 정식 멤버가 됐을 때, 팬들이 내심 바라고 있었다며 인사를 많이 건네주셨어요. 이렇게 함께 하게 돼서 너무 기쁘다고, 본인 일인 것처럼 반가워해 주던 따뜻한 말들이 기억나요.
브로콜리너마저로서 앞으로도 ‘지켜내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잔디 지금까지 해 왔던 것들을 유지하며 확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곡을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유지하고 싶어요. 건강하게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할 것 같아요.
덕원 흉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천방지축인 자신을 다 보여주는 것 자체가 매력인 시기가 있었지만, 오랜 시간 그런 모습으로 주변에 피해를 안 주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나이 들어간다는 감각을 되새길 때마다 더 신경 쓰고 자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동혁 관계의 거리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만약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진정해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밴드, 직장 동료, 친구, 가족 무엇이든지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돌보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브로콜리너마저의 라이프스타일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무엇인가요?
덕원 합주. 오래 연주하면 상대방의 버릇과 습관이 느껴지고, 악보에 기록되지 않은 것도 읽게 돼요. 그런 것들이 깊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요. 저희 팀도 합주하지만, 저희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과도 계속 합주를 하고 있다고 느껴요. 이 팀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이런 노래를 하고 있지, 이런 소리를 냈지, 이렇게 살고 있지를 함께 느끼고 서로 반응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맞춰지고 있죠.
LIFESTYLE LAB 매거진 Vol.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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