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 현예진
포토그래퍼 | Hae Ran
우리 시대에 효율과 등가 교환된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지 않아도 모든 분야에 능통한 인공지능이 답을 알려 주고, 나다움을 찾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그럴싸하게 멋진 옷을 골라 준다. 어느새 스크롤과 탭에 익숙해진 우리는 네모난 화면이 떠먹여 주는 소유에 점점 길들여지고 있다.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자명하다. 생동하는 오프라인의 시간. ‘죽음의 바느질 클럽’은 치앙마이 정신이 깃든 바느질을 매개로 오롯이 살아내는 방법을 고민한다. 효율을 숭배하는 시대에 부러 인간이 손을 써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나아가 기어이 찾아낸다. 무엇도 착취하거나 낭비하지 않고 창작을 지속하는 삶을.

반갑습니다. 서로의 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복태 한군 님은 손 감각이 발달한 사람이에요. 말이나 활자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일보다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에 뛰어나죠. 보통 생각의 발화가 언어라면, 한군 님의 생각은 언어보다 손으로 먼저 연결되는 편이에요.
한군 복태 님은 생각을 소리로 표현할 때는 선과영이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엮을 때는 실과 바늘을 활용해 바느질 작업을 해요. 죽음의 바느질 클럽의 수장이기도 하고요.
‘죽음의 바느질 클럽’은 어떤 공동체인가요?
한군 죽음의 바느질 클럽은 2016년에 시작된 치앙마이식 손바느질 무브먼트예요. ‘무브먼트’라고 표현한 이유는 단순히 기술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기술을 통해 각자의 미감을 발견하고 개개인의 일상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그뿐 아니라 손으로 옷을 짓는 활동은 기후 위기와 지속 가능성에도 도움이 되고요. 이러한 개개인의 움직임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바느질 단체라 할 수 있겠네요.
벌써 10년을 바라보고 있어요. 초창기와 비교해 변하지 않은 것이 있나요?
복태 변치 않는 건 저희가 여전히 바느질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에요.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면 비교적 애정이 줄어들거나,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다 보면 막상 자기 작업을 할 기회가 줄어들기도 하잖아요. 저는 9년째 바느질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 작업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한군 변치 않는 것은 역시 치앙마이 정신이죠. 내 감각을 믿고 나만의 바느질하는 것, 나만의 방식으로 걷는 것. 바느질에 담긴 치앙마이 정신은 바느질을 넘어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키워드예요. 바느질을 통해 ‘내 방식대로 해도 되네! 내 마음대로 했더니 의도치 않게 더 멋진 게 나왔네!’ 이런 멋진 발견을 하곤 해요.
반대로 변한 게 있다면요?
복태 지금은 치앙마이 정신을 생각하고 알리고자 하는 뜻이 조금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삐뚤빼뚤해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다는 것 정도였는데요. 꾸준히 수업에 적용하다 보니 어떤 사람은 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고, 어떤 사람은 땀이 촘촘해야, 어떤 사람은 땀이 일정해야 안정을 찾는 거예요. 그런 분들에게 삐뚤빼뚤을 요구하는 건 오히려 인위적이고 불편한 과정일 수 있죠. 그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모두의 바느질을 존중하게 됐어요. 이제는 각자의 바느질을 하고 있으니 각자의 속도대로 하라고 안내해요. 처음에는 ‘노 하드, 릴렉스’였다면, 지금은 ‘나’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졌어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서 ‘나만의 것’을 발견하기 어려운 분도 많을 것 같아요.
복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확한 걸 좋아해요. ‘몇 밀리미터 간격으로 떠야 해요?’ 같은 질문을 자주 받아요. 치수는 상관없고,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하면 오히려 더 어려워해요. 그럴 때 저는 자유롭게 바느질해 보라고 권하며 각자가 보여주는 땀을 발견하는 역할을 해요. 촘촘히 바느질하는 사람, 널찍널찍한 땀을 가진 사람 모두 저마다의 매력이 있죠. 다 좋다고 하니 답이 없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그게 맞아요. 제각각 좋은 게 사실이니까요.
한군 처음에는 자신의 바느질이 엉망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래도 절대 풀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해요. 풀지 말고 지금 바늘에 달려 있는 실이 끝날 때까지 바느질하라고요. 엉망진창인 것조차 기록으로 남기면 시간이 지나 내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알 수 있는 기준점이 되거든요.

치앙마이 바느질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복태 저희 둘 다 마냥 노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놀러 가서도 뭔가를 경험하거나 어떤 걸 창작해 냈을 때 ‘놀았다’고 느끼죠. 둘 다 옷을 좋아했는데요. 저는 옷을 살 때 55와 66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요. 치수로 단정 짓는 게 불편했어요. 원래 26을 입었는데 어느 날 28이 됐다면, 살이 쪘다고 인식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치앙마이에서는 옷을 재단할 때 줄자를 사용하지 않아요. 원단을 둘러서 맞는 옷을 바로 재단하니까 기성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죠. 사이즈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 내 몸에 사이즈를 맞추는 거예요.
한군 치앙마이 바느질에는 문턱이 없어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지금 만들어 바로 입을 수 있는 방식이죠. 바느질을 전혀 해본 적 없어도 그날 옷을 완성할 수 있어요. 거기에서 오는 기쁨과 효능감이 커요.

두 분은 ‘선과영’이라는 싱어송라이터로도 활동하고 계시지요. 음악과 바느질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나요?
복태 저는 음악을 만들 때도 최소한의 것으로 편안한 음악을 만들고 싶어 했어요. 단순한 기법으로 단순한 옷을 만들 수 있는 치앙마이 바느질처럼, 다양한 악기를 더하는 것보다 최대한 덜어내려고 했죠. 가장 좋은 건 화려한 조미보다 본연의 맛을 살리는 거더라고요. 이런 정서가 정규 1집을 낼 때 녹아들었어요. 그런데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육아와 바느질 작업을 병행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다 보니, 좋은 앨범을 못 내는 게 아닌지 초조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한다고 더 좋은 게 나오지는 않겠다 싶었어요. 바느질을 계속 붙들고 있다고 더 잘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음악도 완성도보다 그 안에서의 나다움을 찾고자 했어요. 부족함이 있어도, 그 순간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워요. 어떤 모습이든 그때의 미숙함마저 여전히 나일 테니까요.
음악, 바느질, 육아 세 가지를 동시에 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게 있다면요?
복태 지금 저는 서랍 정리를 잘하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아침에 눈을 뜨면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집중할 것, 33 Create 출근한 뒤에는 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 6시 이후에는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지낼 것. 각각 칸을 나누고, 그 시간이 되면 이전이나 이후의 것을 가져오지 않는 거죠. 만약 일이 넘치도록 들어오면 더 하지 않아요. 미련의 꼬리가 계속 따라붙으면 현재를 제대로 못 즐기거든요.
한군 저는 시간 사이에 틈이 있다면 전력을 다해 뭔가를 해내야 해요. 사실 음반도 그런 식으로 만들었거든요. 복태 님은 인생 선배라 그런지 일정의 서랍 정리를 잘하는데요. 저는 집에서 아이들과 놀다가도 작업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갈등이 여전히 있어요. 아이들을 재우고 야근해야지 싶다가도, 피곤하니까 일찍 잠드는 일과를 보내죠.
미련의 꼬리를 자른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치앙마이 정신을 일상에도 적용하는군요.
복태 네, 저는 원래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쓸 정도로 매사가 복잡했어요. 열심히 살면서도 자책하기 바빴죠. 그런데 바느질하고 나서 굉장히 많은 것이 느슨해졌어요. 예전에는 당장 주변이 깨끗해야 하니까 계속 치우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오늘 하루 안 치운다고 큰일이 날까 싶어요. 삶에서 죽고 사는 일 외에 심각할 게 없더라고요. 산후 우울증이 극에 달했을 때 죽음의 문턱에 있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죽다 살아난 제2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요. 이제는 덜 자책하고, 오늘 하루 제일 즐거운 일을 찾아요. 바느질을 만나고 행복과 유머가 넘치는 삶이 최고라고 믿게 됐죠.

두 분뿐만 아니라 치앙마이 바느질을 배우는 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던가요?
복태 꾸준하게 수업을 듣던 분이 있어요. 원래 제약회사 연구진으로 일하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의도치 않게 경력이 단절된 분이었죠. 그분은 바느질을 통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론칭해 작업하고 있어요. 배려가 넘치는 분이라 계속 저희를 언급하고 저희와 다른 수업을 만들고자 계속 노력해요. 무기력하다가 자기 효능감을 발견하는 모습, 바느질을 통해 ‘나도 나다운 거 해야지’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한군 러닝화 일화도 있어요. 어떤 분은 러닝을 종종 하는데 신발에 바느질을 너무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분이 미친 듯이 뛰어서 드디어 신발에 구멍이 났고 바느질을 했죠. 매우 만족해하며 ‘바느질하려고 더 열심히 뛴 덕분에 살도 더 빠지고 건강해졌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죽음의 바느질 클럽을 경험한 분들은 구멍을 보고 낙담하기보다, 되레 구멍을 반가워해요. 찢어진 걸 보고 실력을 발휘할 기회라며 기뻐하죠.
두 분의 작업은 원단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다고요.
복태 우리나라 기성복의 경우, 평면 패턴을 이용해 옷을 만들어요. 허리선 같은 부분에 곡선을 사용하는데, 그 곡선에서 재활용하기 어려운 자투리 천이 나오죠. 그런데 치앙마이 전통 복식은 대부분 네모 재단이에요. 그래서 네모를 잘 쓰면 자투리 천을 계속 활용할 수 있어요. 옷을 만들고 남은 천은 모자에, 모자를 만들고 남은 천은 패치워크에, 남은 실은 또 다른 작업에 쓰죠.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바느질이어서 좋아요. 옷을 만드는데 옷을 사는 거랑 똑같이 만들면서 원단 쓰레기까지 나오면, 결국 쓰레기를 만드는 거잖아요. 선순환을 만들 수 있어 기뻐요.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한 뒤로 소비 습관도 달라졌나요?
복태 우선 SPA 브랜드를 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한 철 입고 버릴 옷보다 이왕이면 오래 입을 수 있는 좋은 옷을 사요. 계속 수선해 입어도 아깝지 않은 옷들이죠. 죽음의 바느질 클럽을 하면서 만난 브랜드나 친구가 천연 염색한 옷, 손으로 직접 작업한 옷을 사려고 해요. 선순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공예품을 보면 대부분 구매하곤 하죠.
한군 이제 스토리가 없는 것들은 재미가 없어요. 옷은 물론이고 집기도 마찬가지죠. 이게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까, 하나하나 소중하게 오래 쓰게 돼요. 워크숍에서도 공예품을 깎지 말고 제값에 사라고 많이 이야기해요. 직접 해 보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거든요.
예전에는 안 보였던 것들이 바느질 이후에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거군요.
복태 보통 옷은 옷으로 보잖아요. 만드는 과정을 못 보니까요. 저는 목화 나무를 봤고, 염색하는 장면과 직조하는 장면을 봤어요. 그런데 옷이 너무 저렴한 거예요. 제가 그 돈을 내고 사는 걸 감사하게 되는 거죠. 아이들이 음식을 남기는 것도 같은 거라고 봐요. 이 사과가 마트에서 사 온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맛없으면 다른 마트에 가서 사면 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실제 농부가 건강한 사과나무를 길러내기 위해 들이는 노력을 본다면, 사과를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리 공장에서 만든 것이라고 해도 쉽게 만들어진 건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비닐도 함부로 못 버려요. 비닐도 작업의 소재로 재활용하면서, 무엇이든 함부로 버리지 않게 됐어요.

앞으로 죽음의 바느질 클럽을 통해서 만들어 가고 싶은 문화나 변화가 있나요?
한군 AI가 곧 인간의 인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특이점에 다다른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인간적인, 더 인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죠. 기술과 산업의 발전 말고 감각의 발전을요. 감각에 의존해 손을 쓰는 일처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과 고유의 영역을 지키고 확장시키는 게 더 중요해질 거예요. 그러기 위해 바느질 워크숍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물론, 손 작업의 가치를 계속 알리고 싶어요. 소수민족의 직조를 배워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항해자의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역행하는 거잖아요.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류가 핵전쟁으로 절멸해도 레지스탕스가 있듯이,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다움을 되찾으려 하는 모습을 떠올려요. 거창하게 말하자면, 손의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인류 최후의 보루가 되겠다고요(웃음).
복태와 한군 님의 라이프스타일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무엇인가요?
복태 정직. 손은 거짓말을 못 해요. 손으로 옷을 만드는 행위에서는 무조건 티가 나거든요. 지금 평화로운 마음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는지, 마음이 급한지 아니면 여유로운지가 드러나요. 삶에서도 내 이익을 위해 속이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아요. 바르게 앞으로 가고 싶어요.
한군 천진난만. 천진난만을 한자어로 풀면 ‘하늘에서 내려온 꽃’이라고 들었어요. 물론 세상이 망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와중에 천진난만함을 잃어선 안 되는 것 같아요. 어차피 불타는 세상 하루라도 더 즐겁고 행복하게 동료들과 더 다정한 마음으로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것. 그게 남는 거 아닐까 싶어요. 천진난만함을 잃고 싶지 않아요.

LIFESTYLE LAB 매거진 Vol.16에서
기획·편집·제작 | 어라운드 AROUND

